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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체험기

수험생활의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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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7-29 18:43 조회1,52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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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국선도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건강 때문이었다. 몸의 어딘가가 이상하고 불편해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 봐도, 한의원에 가서 진맥을 해보아도 그저 양호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항상 머리가 무겁고 몽롱한 상태였다. 고등학교 재학시 50분 수업하고 10분 쉬는데, 50분 동안 맑은 정신으로 수업에 집중한 적이 없었다. 50분 동안에 두세 번은 잠깐 졸아야만 수업을 마칠 수 있었으며,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도 머리가 개운하지 않고 항상 무거웠다. 그러니 한창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절에 제대로 학업에 열중할 수가 있겠는가. 그래도 열심히 노력한 결과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으나, 대학시절에도 학업의 성취는 이룰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외형상 매우 건강하였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합기도라는 무술을 연마하여 1단을 획득하였고, 소위 육체미라는 "바디빌딩"을 하면서 바벨, 아령 등 각종 운동기구로 근육을 단련하여 외형상 아주 건장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 내가 다니던 육체미 체육관장한테 자기와 같이 6개월 정도 강도 높게 수련하여 체육관 대표로 "미스터 코리아" 선발대회에 출전하라는 권유도 많이 받았다. 그리고 여름에 해수욕장에 피서가면, 나이 어린 청소년들이 술에 취해 서로 싸우는 광졍들이 목격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수영복만 입고 그 싸우는 현장에서 왔다갔다 하면 싸우던 애들이 놀라서 싸움을 멈추고 조용히 눈치만 살피기도 했다. 아마 나의 툭 불거진 근육에 기가 질린 것이리라. 그뿐이 아니다. 나의 고등학교 동기생들은 나를 운동 잘 하고 달리기 잘하는 친구로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 재학시절 서울시내에 9대 공립고등학교가 있었는데, 내가 2학년 때부터 이 9대 공립고등학교 육상대회가 열렸다. 그래서 나는 학교대표로 선발되어 400m 종목에 출전하여 금메달을 따기도 했다. 이렇게 운동도 열심히 하고 달리기도 잘하고 체격도 건장한 내가 아프고 몸이 안 좋다고 하면 어느 누가 믿을 것인가! 엄살이라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내가 이렇게 머리가 항상 맑지 못하고 구름이 잔뜩 낀 하늘처럼 무겁고 몽롱한 것은 이유가 있다. 나는 여러 가지 사정상 중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 경동고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검정고시 공부를 할 당시 나는 모질게 공부에 열중하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2년 동안 농사일을 거들면서 허송세월을 보냈던 터라 마음이 급하기도 했다.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하고 공부를 시작한 것은 1970년 1월 6일부터였다. 그리고 시험은 7월 15일이었다. 6개월 20일간 중학교 3년 동안 배워야 할 것을 모두 익혀야만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밤잠을 자지 않고 책을 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 기간 동안 서울 청진동 독서실에서 기거하면서 식사는 근처 식당에서 사먹고 낮에는 중앙학원이라는, 숙명여고 뒷편에 있는 학원에 나가고 수업을 마치면 독서실에 처박혀 공부에 몰두했다. 책을 보다가 졸음이 밀려오면 책상에 엎드려 잠깐 눈을 붙이고 또 일어나 공부를 강행했다. 그러다보니 발이 퉁퉁부어 신발을 신기도 불편했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 그렇게라도 공부를 강행해야 했고 드디어 체력의 한계가 왔다. 도저히 졸음을 쫓을 수가 없었다. 졸음을 참고 이겨내려 하니 무척 고통스러웠다. 그때 우연히 ‘타이밍’이라는 약을 알게 되었는데, 졸음을 쫓는 데는 최고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약국에 가서 한 알을 사먹어 보았더니 잠을 한숨도 안 자고 새벽까지 공부했는데도 정신이 말똥말똥했던 것이다. 참으로 신기했다. 그래서 자주 사먹게 되었고 나중에는 한꺼번에 세 알까지 먹어야만 효과가 있었다. 이미 중독이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고생 끝에 목표한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었으나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항상 머리는 무겁고 몽롱하니 무슨 공부를 할 수 있겠는가. 바로 잠 안오는 약인 타이밍의 부작용에 시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운동도 열심히 해보고 한약도 지어 먹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이렇게 해서 금싸라기 같은 청춘을 안개 속에서 헤매고 있었다.
 그래도 세월은 흘러 그럭저럭 대학을 마치고 관세청에서 공무원으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하였다. 결혼도 하게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었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친구들과 동료들과 또는 일과 관계되는 사람들과 자주 어울려 술을 마시는 일이 새겼다. 이러다보니 건강은 더욱 악화되어서 심장에 이상이 오는 자각증상이 느껴졌다. 가끔씩 왼손이 저려오고 현기증도 일어났다. 그러던 중 1992년 9월 하순 할머니 기일이 있어 집안 어른들이 형님집에 모여 건강에 대해 이야기하는 도중 한의사인 숙부님께서 기 수련을 하면 건강해진다는 말씀을 하셨다. ‘기’라는 말에 내 귀가 번쩍 트였다. 그때 ‘그래, 바로 그거다. 나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기 수련뿐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를 수련하는 곳이 어디인가 찾아다니다가 정년퇴임 후 서울 대방공원에서 주민들에게 국선도 지도를 하셨던 박경수 님으로부터 국선도가 전통이 있으며 제대로 된 도법이라고 권유해 주셔서 입문하게 되었다.
 92년 10월 5일 입문한 후 참으로 열심히 수련하였다. 김포세관에 근무할 때 항공기 도착시간의 간격으로 중간중간 쉴 시간이 많았다. 그럴 때면 휴게실 침대에 누워 휴대용 카세트로 도인도송을 조그맣게 틀어놓고 호흡을 했다. 그러나 얼마나 몸이 굳어 있었는지 가부좌 자세를 하는 데만 6개월 이상이 걸렸다. 그렇게 수련하던 중 약 2개월이 지난 92년 11월 하순부터 새끼손가락 끝마디 부분에 타원형의 짙은 암갈색 반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참 이상하다 생각했지만 몸의 탁기가 배출되는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머리도 맑게 깨어 있는 시간이 점점 길어졌다. 그리고 나는 발에 무좀이 매우 심했다. 급기야 발톱에까지 침투하여 발톱색깔과 모양이 말이 아니었다. 여름, 겨울 가리지 않고 하루라도 무좀약을 바르지 않으면 가렵고, 덧나고, 냄새가 고약하여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국선도 수련을 시작한 약 1개월 후부터는 바르는 무좀약의 사용을 억제하게 되었다. 매일 바르던 것을 4~5일에 한 번씩 사용하더라도 더 이상 악화되지 않고 냄새도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욱 신기한 것은 무슨 바쁜 일로 국선도 수련을 며칠 거르게 되면 여지없이 무좀이 악화되고 냄새도 나는 것이었다.
 약 3개월이 지난 92년 12월경부터는 양쪽 새끼 손가락 셋째마디 중간과 왼손의 중지, 약지의 셋째마디의 손바닥쪽 중간이 각질화되면서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 당시 본원에서 수련을 지도하시던 모정원 법사님에게 문의한 결과 다른 회원 한 사람도 그런 경우가 있었으나 차츰 없어졌으며, 몸의 탁기가 배출되는 과정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래서 내 몸 안에는 참으로 많은 탁기가 쌓여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더욱 열심히 수련에 매진하였다. 이러한 현상도 약 3개월이 지난 후 차츰 없어지면서 피부가 부드러워졌다.
 건곤단법을 시작한 지 약 2개월이 지난 93년 9월 5일, 이 무렵 나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 닥치고 있었다. 그것은 관세사 자격시험이었다. 그러니까 국선도 수련을 시작한 지 1년이 지난 때였다. 그때 나는 인천 세관 감시과에 근무하면서 교대 후 쉬는 시간에 행정법 책을 보고 있었다. 그때 지나가던 동료직원이 관세사 시험공부를 하느냐고 묻기에 그냥 보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직원에게 일부 과목 면제가 되는 관세사 시험은 그면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고 하는 것이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였다. 관세사 시험 준비를 하나도 해놓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랴부랴 수소문하여 시험준비를 하고 있는 동료직원들을 찾아내어 도움을 청하기 시작했다. 나 모 직원이었는데, 3~4년 전부터 준비를 해와 꽤 준비가 잘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 직원으로부터 요점정리된 노트를 복사하고 필요한 책들을 소개받는 등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시험은 12월 5일이었다. 약 3개월이 남은 것이다. 나는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육상 초소에 근무하면서도 교대시간이 되면 항상 책을 보았다. 오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24시간 근무하고 퇴근하는 격일제 근무였다. 그래서 나는 본원에서 새벽 5시 25분에 시작되는 1회 수련을 마치고 출근했으며 퇴근 때도 오전 10시에 시작하는 3회 수련시간에 수련을 하고 귀가하여 점심을 먹고 동네 독서실로 갔다. 시험준비 기간이 3개월밖에 남지 않아 시간이 부족했지만 국선도 수련은 계속했다. 그간 열심히 수련한 덕택으로 머리는 맑아 있었고 집중력도 향상되어 있었다. 수련 전 같으면 30분 이상 공부를 계속할 수 없었지만, 2~3시간은 무난히 버틸 수 있었다. 피로해지면 휴게실에서 의자를 붙이고 그 위에 누워서 약 5분 내지 10분 정도 단전호흡을 했다. 그러면 깊은 숙면을 취한 후처럼 머리가 맑아졌다. 그래서 공부 진도는 매우 빨리 진행되었다. 국선도 수련의 위력을 재삼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또 위기가 닥쳤다. 시험일 이틀 전에 독감에걸린 것이다. 국선도 수련인이 감기에 걸린다는 것은 드문일이지만, 시험공부하느라 무리를 한 탓이었다. 약을 먹지 않고 버티다가 도저히 열 때문에 참을 수 없어 시험 당일 감기약을 먹고 시험장소인 언북중학교에 당도했다. 감기약을 먹고나니 멍하니 비몽사몽간이었다. 다른 수험생들은 지정된 장소에 앉아 열심히 책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도저히 책을 볼 수가 없어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단전호흡을 하였다. 한 과목 시험이 끝나면 곧바로 화장실에 갔다와서는 또 눈을 감고 단전호흡을 했다. 그랬더니 서서히 다시 머리가 맑아오면서 무사히 전 과목 시험을 치를 수 있었다.
 시험이 끝나고 나니 기진맥진해졌다. 차를 운전하여 귀가하기조차 힘들었다. 그러나 합격했구나 하는 확신이 섰다. 감기만 아니었으면 좀더 잘 치를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도 있어 불합격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는 않았다. 시험결과는 합격이었다. 가족들과 많은 동료들이 축하해 주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준비해 오면서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던 그 나 모 직원은 불합격이었다.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시험 운이 없구나 하고 속으로 위로해 주었지만, 애석한 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어려운 시험을 약 3개월 준비로 합격하였으니, 이 과정을 아는 사람들은 놀라워했다. 항상 머리가 무겁고 몽롱하여 허송세월을 보내던 나로서는 기적 같은 일이었다. 국선도 수련의 위력은 참으로 놀라웠다. 그 무겁던 머리가 맑아지고 집중력이 향상되니, 그 짧은 기간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생이 시작된 것이다. 합격한 이듬해인 1994년 7월 경동관세사무소를 개설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녀노소 모두에게 국선도 수련을 권하고 싶다. 특히 수험생들이 이 국선도 수련을 한다면 더욱 일취월장 진척이 있을 것이다. 조그만 짬이라도 내어 국선도 수련을 병행한다면 건강도 지키고 공부도 훨씬 능률이 오를 것이다.
 2002,11,28   강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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