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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체험기

어둠과 절망뿐이던 내게 밝음이 채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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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7-29 18:27 조회9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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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는 모두 순리가 있고 그 순리에 따르는 것이 자연의 이치인 듯하다. 

내가 국선도를 알게 된 것도 또한 결코 우연은 아니요 이러한 이치에 따른 것이리라. 

 

  97년 7월 28일, 발병후 1년여 만에 왼쪽다리 오금에 생긴 섬유종증(양성종양) 수술을 받았다. 수술 1년전 처음 이상을 느꼈을 때는 병원에서나 본인이나 모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고, 생활하는 데도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하다가 종양이 부쩍 자라 야릇한 통증과 함께 걷는데도 어려움을 느낄 정도로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에 이르러 결국은 수술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국선도 수련을 4년여 간 하고 있던 남편이 수술을 하기 이전부터 수련을 같이하자고 여러 번 권유를 했었으나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때는 인연이 아니었던지 무심히 흘려 버리곤 했었다. 결국 수술 후 건강을 잃고 나서야 수련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이것도 다 하늘의 뜻이리라 생각한다. 

 

  수술후 97년 8월 15일 남편은 기부스를 풀자마자 목발에 의지하지 않고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나를 데리고 4층이나 되는 도장의 계단을 업고 오르내리며 마침내는 나를 국선도에 입문시켰다. 

  매일 새벽 첫타임 수련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시간이 나는 대로 테이프를 들으며 수련을 하곤 했다. 준비-정리운동은 그동안 남편이 집에서 하는 것을 자주 보아왔고 가끔 따라했던 덕분에 쉽게 익힐 수 있었으나 단전호흡은 좀처럼 감이 잡히질 않았다. 사범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 열심히 한다고는 했으나 어떤 날은 이것인가 싶다가도 또 다음날은 전혀 모르는 듯 혼란을 거듭하며 중기단법 전편을 시작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 때는 지금과 같이 입문호흡 단계를 거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하며 처음부터 바로 단전에 의식을 두고 배를 앞 뒤로 힘껏밀어 배모양을 만드는 데만 여념이 없었던 듯하다. 요즘 도종사님이나 사범님들이 주의 하라고 강조하시는 부분에 대한 오류를 거의 모두 범했다는 생각이 든다. 

  차츰 행공 동작도 익숙해져 가고, 단전에 따뜻한(미지근한) 기운도 느낄 수 있고, 뿌듯한 압력감이 생기기 시작하며 건강하지 못한 탓이었던지 ‘진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에 야릇한 기쁨과 흥분감이 없지는 않았으나 그 때마다 사범님이나 남편은 그러한 현상들에 너무 집착하거나 즐기려 하지말고 무심히 수련에만 정진하라고 독려하셨다.  

  

  처음에는 단순히 건강을 회복하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반신반의하며 단순한 운동 차원으로만 생각하고 수련을 시작했는데, 차츰 수련을 하다보니 그러한 나의 생각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다. 그러한 기대감만 가지고 수련을 하다보니 "욕심"이 생기고, 욕심을 부리면 꼭 부작용이 생겨 등이 뻐근하고, 명치부분이 묵직하기도 하고, 때로는 머리가 아프기까지 했다. 

  

  차츰 국선도법의 심오함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몸과 마음으로 느끼고 체득해 가며, 수련에 대한 ‘욕심’부터 하나씩 버려가기 시작하며 중기단법 수련을 약 8개월 정도에 마쳤다. 

  

  98년 4월부터 승단하여 건곤단법을 시작하였으나 사범님께서 띠를 바꿔주시니 기쁜 반면에 어쩐지 부족한 듯하고 쑥스러운 생각이 들었다. 더욱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생각하기로 했다. 

  계속되는 수련에도 불구하고 수술후 종양은 곧바로 다시 재발하기 시작하여 수술전보다 더 빠른 속도로 자라나기 시작했다.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새벽 첫 타임과 저녁 6시 50분 두 타임을 하곤 했는데 (이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남편이 아니었다면 그나마 1회 수련도 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이 수련만으로는 역부족인 듯 싶었다. 남편은 모든 것을 제쳐놓고 수련에만 전념하라고 재촉했으나 IMF가 터지며 남편이 명예퇴직을 한 상태이다 보니 직장을 그만둘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수련의 효과는 불과 1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건강한 다리의 2배정도 굵기로 종양은 커져서 굽히고 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지고,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지 않아 까치발을 디뎌야만 했다. 온 몸이 오그라들게 하는 견디기 힘든 야릇한 통증과 수련을 놓고 있으면 마치 통나무 같이 굳어져 가는 내 육체의 변화는 수련을 하면서도 수 없이 나를 좌절하고 방황하게 만들었다. 겨우 조금씩 움트고 있던 국선도에 대한 신뢰가 그 때마다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병원측에서 거의 100% 재발할 것이며 그 때마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기 때문에 각오는 하고 있었으나, 이렇게 빨리 수술 직후부터 재발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1년에 최소한 한 번 정도는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렇다면 나의 선택은 오직 수련뿐이다’ 라고 생각하며 흐트러진 나의 몸과 마음을 추스리며 다시 수련을 시작하곤 했다. 이러한 흔들림 속에서 다시 딛고 일어나 수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마다 국선도에 대한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심어준 남편의 덕분이라 생각하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던 중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하루종일 도장에서 생활하다시피 하며 수련에 전념하게 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중기호흡부터 다시 시작을 하였다. 행공시 견디기 힘든 통증이 고문이라도 하듯 밀려오곤 했다. 그 때마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수련으로 인한 변화의 한 과정이며 좋은 반응이라고 믿으려 노력했다. 2-3타임씩 연이어 수련을 해보면 놀랄 정도로 큰 변화가 나타났다. 그동안 발뒤꿈치가 바닥에 닿지 않아 까치발로 걷곤 했었는데 이러한 날은 수련 후 잠시이긴 하지만 발바닥이 바닥에 닿는 것이었다. 발바닥을 딛고 살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고 기쁜 것이라는 것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이렇듯 열심히 수련을 하면 딱딱하던 종양도 느슨하고 헐렁해 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잠시 그 전보다 수련의 강도를 낮추거나 조금 게을리하면 순식간에 원상태보다도 더욱 악화되곤 하는 무서운 번식력을 갖고 있어 수련이 마치 병과의 전쟁이라도 치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치열했다. 

 

 

  이렇듯 중기, 건곤은 방황과 갈등 속에 수련이라기보다는 병과 치열한 싸움을 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원기를 수련하며 나에게 아주 커다란 ‘마음의 변화`가 왔다. 

  원기단법 수련중 어느 날 무념의 상태에서 단전에 편안하게 의식을 두고 쉬고 있노라니 단전부위에 축구공만한 밝은 것이 뚜렷이 나타나며 시야가 아주 넓어지며 지금까지 힘들고 고통스럽게 느껴지던 나의 육체는 흩어져 마치 우주와 하나가 되어 없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며 마음이 아주 편안해 지는 것이었다. 의식은 더욱 맑아지며 가슴이 탁트이고 시원해지는 것이었다. 

  그 순간 "아! 그동안 내가 얼마나 나의 육체에 매달리고 집착해 왔었는가, 결국 육체는 나의 한 일부일 뿐인데......"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그 이후 나의 항로는 확실해 졌다. 어둠뿐인 망망대해에서 헤메이다 이제야 등대를 만난 것이다. 육체적으로 어떤 커다란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는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를 가지고 좀더 큰 뜻을 품고 수련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젠 어둠뿐이고 절망 뿐이던 내 맘에 ‘밝음’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다. 더 이상 나의 육체와 싸우지 않으려고 한다. 종양도 내몸의 한 일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무거운 짐을 내려 놓은 듯 홀가분하다. 앞으로의 나의 삶이 희망적이고 마냥 기쁘기만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무지하게 살았었는가 ! 

  그 동안은 육체만큼이나 절름발이 국선도인 이었지만 앞으로는 온전한, 건강한 국선도인이 되도록 노력하리라. 오늘의 내가 있게 해주신 스승님들과 지도자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국선도를 알게 해준 남편께도 고마움을 전한다. 

  

   어느 사범님의 말씀이 문득 떠올라 적어본다. 

 "수련에 대한 욕심을 버려라.   

  이 생에서 꼭 뭔가를 얻으려고 하고, 이루려고 하는 것도 욕심이다. 

  그 것도 다 버려라. 

  이 생에서 다하지 못하면 다음 생에 이루면 되지 않겠는가" 

   

 

근간의 정황 

 

 수련을 계속 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양은 점점 커져만 갔다. 

 수련이 종양의 성장을 지연시켰으리란 것은 확실하지만, 완치되기까지는 나의 수련에 한계가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마음’ 수련임을 절감하면서도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중 지난 12월(2001년)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원자력 병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권위 있는 의사선생님께서 내린 결론은 ‘다리절단’ 뿐이었다. 

현대의학으로는 어떤 치료방법도 없다는 것이었다. 절망 뿐 이었다. 

 

  그러나 ....  

  아직 내겐 수련이 남아 있었다. 현대의학을 내가 포기(병원에서 나를 포기했던가?)하고 나니 차라리 덜 복잡했다. 수련 한가지만 하면 되니까. 

  마음을 비우고자 노력했다. 수련시간을 많이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겐 ‘마음수련’이 중요함을 느끼며 평안한 마음, 넓은 마음,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자 노력했다. 

  수련과 더불어 대전에 있는 한의원(권선영 원장님)엘 5개월째 다니고 있다. 전후 사정을 잘 아시는 그 곳 원장님의 처방에 따라 여러 가지(침, 숯팩, 다시마 붙이기, 약먹기 등) 치료를 겸해서 하고 있는데 정말 믿기지 않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계속해서 자라기만 하단 종양 덩이가 2개월에 약 2Cm씩 4Cm나 줄어든 것이다. 통증도 많이 줄어들었고, 종양이 자라느라 느껴지던 기분 나쁜 열감도 많이 없어졌다. 

  이 기쁨을 어떻게 글로 다 표현해야 할지......  

  마음만 벅찰 뿐 글이 되질 않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저 감사! 감사! 모든 이들께 감사한 마음이다.  

  그러나 이제 시작일 뿐이다 . 어둠의 긴 터널에서 이제 막 한줄기 빛을 발견했을 뿐이니까. 아직 완치까지는 워낙 종양덩이가 커서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의원 원장님께서도 수련을 좀더 열심히 하라고 권하셨다. 

 

  이젠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수련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 김순희님의 수련기 2002년 11월 28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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