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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 저하증, 악성빈혈을 이겨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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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7-07-29 18:20 조회1,07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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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오십을 바라보며 내린 행복에 대한 정의는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고 아프지 않으면 그게 행복이라고 여긴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흠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고통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지금처럼 훌쩍 큰 키가 아니었을 때, 딸 귀한 집안에서 오빠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남동생도 제치고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던 시절이 돌아보니 행복한 한때였다. 17년 전에 내 아버지는 가시고 열일곱이 된 딸과 스무 살이 된 아들, 남편, 시부모, 구 남매나 되는 남편의 형제자매들, 그 틈에서 행복이란 단어는 잊고 살았다. 세상을 짊어지고 가는 내 짐이 제일 무겁고 불행해서 마음 속으로 늘 노라를 꿈꾸었다. 한 달에 스무번은 노라의 집을 밖에다 짓고 허물고 젊은 날을 온통 가출하고 싶은 마음과 싸우며 그래도 여전히 똑 같은 날이 지나가던 서른 중반 무렵, 89년부터 무기력증이 찾아오고 있었다.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 오래되고 무거운 솜이불을 물에 담그었다가 들어올리는 기분이란 이루 표현이 어렵다. 농협에 다니고 있었는데 출근하려고 화장대 앞에 서 있으면 그대로 주저앉고 싶은 날들이 매일 반복되고. 출근해서는 개인사물함에서 원비와 우루사를 박스 채로 사다놓고 매일 하나씩 꺼내먹고 두통약이 떨어지면 옆사람의 서랍에서 게보린을 꾸어먹고 다시 갚고…….
 시어머님이 돌아가시자 여러 가지 이유로 직장에 사표를 냈다. 몸은 약해도 감기에 걸린 적은 별로 없었는데 감기인줄 알고 병원에 갔더니 갑상선이 의심스럽다고 했다. 그리고 원주기독병원에서 갑상선 저하증 판정. 다시 수술. 문제는 수술 후에 더욱 심각해졌다. 수술 후 1주일 입원기간 동안 옆 침대에 폐렴환자와 같이 입원해 있었는데. 여지없이 폐렴에 걸려 퇴원을 했고 끝없이 나오는 기침 때문에 전화를 받을 수도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서너 달이 지나서 기침은 멎었는데, 목의 수술부위는 기침 때문에 앞으로 불룩 튀어나와 기형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다 기운은 날이 갈수록 떨어져 집안 일이 어렵고 늘 눕고만 싶어서 실제로 누워 지냈다. 빨래를 하면 청소할 기운이 없고 청소를 하면 밥을 할 기운이 없었다. 이웃에 사는 친정언니와 시장에 나가면 걷기가 힘들어 아무데나 주저앉아 쉬었다. 걸음걸이가 앞으로 나가지 않아 영화 속의 슬로우 모션처럼 천천히 움직였는데 집으로 돌아와 2층으로 오르는 계단을 까마득하게 쳐다보며 절망했다. 그 무렵 치과에도 다녔는데 여섯번의 부분마취 후 빠르게 기억력이 저하되며 판단력도 잃어갔다.
 원주 동아서관 앞에서 방향감각을 잃고 어제까지 다니던 병원이 어디 있는지 한참을 생각하다가 기억하지 못해 집으로 간다고 버스를 탔는데 우산동에서 내리지 못하고 두어 정거장 더 가서야 정신이 들어 돌아왔다. 냉장고에 음식을 꺼내려고 문을 열면 내가 지금 무엇을 가지러 왔는지 열이면 열 번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다시 싱크대로 돌아가서 필요한 것을 눈으로 보고 마늘이 생각나면 큰소리로 “마늘!” “김치!” 외치면서 냉장고문을 열면 잃어버리지 않았다. 아이들은 우습다고 웃었지만 나는 심각했다. 머릿속이 판단력을 잃어 뒤죽박죽이고 걸어다닐 기운도 없고 다시 기독병원 외과에서 진찰, 이번에는 간이 나쁘다고 했다. 그것도 병명에도 없는 간염이라는데 “업친데 덮치고 있군요”, 했더니 의사선생님이 “그렇네요.” 한다. 어깨는 누가 누르지 않아도 올라앉아 누르는 것처럼 어깨와 앞가슴이 무거웠다. 언어구사가 잘되지 않아 ‘세탁기’를 말하려는데 ‘냉장고’가 나오고 그것도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아 어린애의 옹알이처럼 우물거리다가 말고 생각만큼 조리있게 의사표현이 되지 않아 겉돌았다. 아들의 명함판 사진을 찾으러 사진관에 갔다가 그 설명을 해낼 수가 없어서 무슨 일로 왔느냐고 자꾸 묻는 바람에 그냥 집으로 돌아왔다. 자주 목에 이물질이 걸린 듯 말하기가 힘들었다. 완전히 치매에 걸린 사람 같았다. 죽음을 생각했다. 어디부터 정리할까? 그나마 정리가 되지 못하고, 거울을 보니 예전의 내 얼굴이 아니다. 이상하게 부은 듯도 하고 머리카락은 가늘어져서 마른 수세미 같고 근육의 균형이 깨어지고 있었다.
 이때 만난 국선도!
 처음에는 희망도 없이 다녔다. 다른 대안이 없으므로, 이까짓 거 해봐야 뭐가 좋아질까? 반신반의하면서 누워서 하라니까 잠도 자고 코도 골고 어쩌다 숨쉬기도 하고……. 그런데 보름째부터 신호가 오기 시작했다. 무릎에 관절염도 있었는데 무릎이 바늘로 찌르듯이 3일간을 계속 아프더니 딱 멈추었다. 20년을 넘게 앓던 관절염이 그 뒤로 좋아졌다. 수련 두 달째 6년 전에 앓았던 요통이 다시 찾아 왔는데 이 요통은 나를 꼼짝 못하게 도장 바닥에 뉘여 놓더니 열흘만에 사라졌다. 그리고 기침이 백 일 동안 계속 되고 다시 사라지고, 그 뒤에도 몇 개월 간격으로 기침은 계속 되었다가 중기단법을 마칠 무렵 아주 없어졌다. 시력이 나빠져 눈이 침침하고 안개 낀 듯 했는데 수련 6개월째 도장 문을 나와서 건널목을 건너려는데 강한 햇빛에 갑자기 시야가 흐려져 앞에 있는 사람도 형태만 보일 뿐 모든 사물이 물에 섞인 듯 불분명해졌다. 그래도 걱정하지 않았다. 이미 경험으로 알고 있으므로. 3일간 사물이 흐리더니 오히려 예전보다 시력이 좋아져 선명하게 보이고 눈에 이물감도, 글씨가 겹쳐 보이던 증세도 사라졌다. 집안 일은 물론이고 접어 두었던 방송대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1년뒤 기독병원 검사, 직장에 다닐 때 종합검진에서 매번 나오던 악성빈혈이 없어졌다. 간염도 없어지고. 자신감에 찬 나는 갑상선 약도 끊어 버렸는데, 이것은 오산이었다. 갑상선의 절제로 칼슘분비가 되지 않는데 무리하게 약을 끊었더니 다시 나빠지고 쵸콜렛 하나 먹는다는 기분으로 약 먹는 기분을 바꾸려고 애썼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수련 할 때는 온종일 집안 일을 해도 전혀 피곤하지 않았다. 꿈도 못 꾸던 치악산 상원사에 거뜬히 다녀오고 무엇보다 방송대를 졸업했다. 1, 2 학년때는 F학점에 온통 C, D 판이었는데 3, 4학년의 학점은 A 학점도 꽤 있고 못해도 B 학점이다. 고도의 집중력을 준다는 엠씨스퀘어는 필요 없었다. 수련이 곧 집중이므로.
 몸이 좋아지면서 상대방의 입장을 다시 생각한다. 그리고 내게도 문제가 있었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아쉽게도 원주 도장이 문을 닫게 되어 연수장에서 1주일에 3일만 수련하니 기운이 반으로 줄었다. 그저 일상에 불편이 없을 정도의 기운이다. 집에서도 수련하고자 노력하나 도장에서 수련하는 효과만큼 나지 않는다. 아침 저녁으로 두 번만 수련할 수 있어도 얼마나 좋을까? 그런 소원을 세워 두었는데 다시 예전 도장이 있던 그 장소에 국선도 원주지원이 들어오고 아무 때나 마음먹으면 수련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 감사한다. 의약 분업 이후 병원 가서 다시 진료 받아야 약을 주는 절차가 번거로워 내 맘대로 약을 끊어버렸다. 처음에 한달은 몹시 피곤하고 눕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더욱 열심히 수련했다. 그 이후로 기운이 돌아오고 일상에 무리가 없다. 그래도 걱정스러워 약을 끊은지 육개월 만에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더니 약간의 증세는 있지만 약을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진단이 나왔다. 그 기분이란 ? 의사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수 없이 하고 병원 문을 나서며 혼자 다짐한다 . 다시는 병원에 오나 봐라. 문병 오는 거야 할 수 없는 일이지만 ......
사람이 편하면 고통스런 때를 쉽게 잊는 게 문제이다. 수련이 게을러 질 때마다 알아서 내 몸이 신호를 보내오니 고맙게 생각한다. 사는 동안은 열심히 수련할 것이다 .온통 나를 드러내서 발가벗고 서 있는 기분이지만 이 수련기가 나와 같은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면 졸필이 부끄럽지 않겠다.
강원도 원주시 우산동 103-6 박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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